활동
지역의 스토리를 찾아서③ - 전등사 이야기
2018.11.04※ 본 콘텐츠는 웹사이트 오픈 전 활동에 대한 기록으로, 기존 활동 기록들을 모아 재구성한 일기입니다.
강화도의 남쪽 길상면에 위치한 ‘전등사(傳燈寺)’는 국내 현존하는 절 중에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합니다. ‘최고(最古)’라는 타이틀답게 관련 설화가 많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저희가 조사한 전등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몇 가지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는 추녀 밑에서 지붕을 받들고 있는 나부상에 대한 전설입니다. 절을 짓던 도편수는 절 아랫마을 술집 아낙을 사랑하게 되었는데요. 절을 다 지어갈 무렵 그 아낙이 목수의 물건과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목수는 그 아낙을 원망하며 그 여자를 나체 형상으로 만들어 무거운 추녀를 들고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은 술집 아낙이 아니고 도편수가 사랑한 여인이 있었는데 도편수가 절 짓는데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정분이나 도망가자 복수심으로 나부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4개의 나부상들은 모두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2. 전등사의 진입로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각각 700년과 300년 된 은행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불교 탄압이 심했던 조선왕조 시절, 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사역을 해야 했던 스님들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는데요. 따라서 많은 절이 폐사 또는 퇴락해 갔습니다. 강화도 전등사에도 벼슬아치와 토호들의 토색질이 심했는데요. 젊은 스님들은 강화 성을 쌓는 노역에 끌려 나갔고, 나이든 스님들은 절에서 종이를 만들어 바쳐야 했습니다. 스님들은 이런 어려움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나 10가마 이상은 열리지 않는 은행을 20가마나 공물로 바치라 하여 종이를 만들던 한 스님이 동승과 함께 다가오는 노스님에게 방법을 여쭈었습니다. 방법을 연구하던 노스님은 동승을 시켜 백련사 추송 스님을 모셔오게 하고 수인사를 마친 두 스님은 한동안 무엇인가를 의논하고는 은행나무 아래 제단을 만들어 3일기도를 올렸습니다. 이튿날 아침부터 은행을 더 열리게 하는 3일 기도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은 인근 마을에서 곧 강화 섬 전역에 퍼졌고, 강화 섬 벼슬아치들도 호기심을 갖고 기도장에 나타나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목탁과 바라소리, 그리고 염불소리가 일시에 멎으며, 신비로운 적막이 천지를 뒤덮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추송 선사의 낭랑한 음성이 적막을 깼습니다. 추송 선사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게 해주기를 축원하였고, 선사의 축원이 끝나자마자 바람이 일고 뇌성이 치더니 때 아닌 먹구름이 일면서 우박과 비가 퍼부었습니다. 그 위로 은행 열매가 우수수 떨어졌고, 육환장을 짚고 선 노승과 동승이 마주서서 크게 웃고 있었습니다. 이날 이후 노승과 동승은 물론 추송 선사도 보이지 않았으며 관가의 탄압도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열매를 맺지 않는데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 하나를 노승나무, 다른 하나를 동승나무라고 부릅니다.
3. 전등사에는 물을 담아 두는 커다란 수조(水槽)가 하나 있습니다. 해설사 분께서는 이 수조가 ‘소화기’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소화기라기보다는 어떤 미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수조에 물을 가득 채워 두면, 공중에 떠다니는 화마의 불귀신이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다른 귀신이 이미 와있다고 착각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흥미로운 설화였습니다. 해당 수조는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